2022년은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2022년이 끝날 때 한 해를 돌아보면서 새해 다짐을 할 계획이었는데, 하다 보니 늦어져서 결국 입사한 지 한참 지난 지금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1. 카카오 추천팀 인턴십
2022년의 시작은 카카오 인턴십이었다. 지원 과정은 이미 블로그에 작성해 둔 글로 대체하겠다. https://rebro.kr/195
약 보름 전에 소집해제를 하고 바로 시작한 인턴이었고, 인턴시작 후 1주일 후에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하느라 초반에 되게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인턴은 실제 서비스되고 있는 추천 시스템을 개선하는 개인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전에는 인턴 사람 수도 많고 기간이 더 길어서 주로 2개의 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사람 수도 굉장히 적었고 기간도 짧아서 인턴 기간 내내 1개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중 나는 카카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브런치의 추천 시스템 개선 작업을 진행하였다.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처럼 업무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 실제 회사에서 사용하는 모든 코드를 직접 살펴보며 개선할만한 사항이 있으면 수정한 후 배포까지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복지 또한 정규직과 동일하게 다 제공해 주었고, 틈틈이 나오는 간식비나 식사비를 보며 이래서 큰 기업에 가야 하는 이유인가 싶었다.
카카오에서 동료를 칭하는 크루(krew)들 또한 정말 뛰어난 실력자분들이고, 시간에 관계없이 항상 질문에 잘 답변해주셔서 팀 자체가 되게 일하기 좋고 성장하기 좋은 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었기 때문에 전환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중간쯤 부턴 기대를 버렸다. 어쩌면 버려진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첫 인턴이다 보니 업무에 적응하고 ML 관련 사전 지식을 쌓는데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러기엔 인턴이 약 7주 정도로 꽤 짧았다. 인턴이 끝날쯤에 돼서야 업무에 적응한 기분이었고 기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또, 인턴 지원과정이 사실상 프로그래밍이나 알고리즘이 대부분이었어서 생각했던 업무와 실제 업무가 꽤 다른 영향도 있었다.
그리고 재택근무의 단점들이 그 당시의 나에겐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인턴 내내 풀 재택근무로 진행되었는데, 출퇴근 거리가 왕복 3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재택근무가 당연히 장점이 되긴 했지만, 단점으로 작용한 부분도 꽤 많았다.
기본적으로, 회사 일을 처음 해보다보니 재택근무의 효율이 높지 않았고, 완전 자율 근무제여서 근무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막 자취를 시작한 상황이라서 자취 생활의 적응과 회사 생활의 적응, 재택근무의 적응을 한 번에 모두 해야 했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개인 프로젝트인데다 비슷한 분야를 하는 다른 인턴이 아예 없었어서 가벼운 질문이나 좋은 정보 등을 공유하기가 되게 어려웠다. 프로젝트 형태가 각자 알아서 개선사항을 찾아서 개선해 보는 방식이라 특별한 가이드라인 없이 예전 인턴들의 자료와 깃헙 코드 등을 살펴보며 혼자 헤쳐나가야 했고, 그에 따라 질문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현직자들에게 실시간으로 계속 답변을 받기가 어려워서 초반에 업무 진행이 매우 느렸다. 물론 멘토분들이 친절하게 잘 답변해주셨지만, 텍스트로 질문을 주고받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담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전 인턴들의 자료가 있는 깃헙 권한을 받았어야 했는데 누락되었고, 나 또한 이런 자료가 있는 줄 몰라서 약 일주일 후에 받았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첫 일주일 동안은 정말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일주일이 아닐까 싶다.
결국은 모두 내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일들이었고, 오히려 전환이 된다고 해도 그 당시엔 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았다. 글을 쓰다 보니 "지금 다시 추천팀 인턴을 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위에서 언급한 많은 경험들이 내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올여름의 인턴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피스는 퇴사하는 날 처음 가봤고, 다른 인턴 동료들도 그날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역시 회사 시설이나 근무 환경이 확실히 좋았고, 인턴 중간에 한 번씩 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는 날 오피스 근처에서 카카오에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선배를 만났다. 전환이 되고 나면 쏘라고 형이 비싼 양고기를 사줬는데... 안될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얼른 월급 받아서 보답하고 싶다.
2. 복학
겨울 인턴이 끝나고 2년 반 만에 복학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온라인 수업이 이 당시에 처음이었다. 운이 좋게도(?) 정확히 코로나가 시작되는 시기인 2020년 3월부터 군 복무를 하게 되어서 한 번도 줌 수업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사실 22년 이전에는 끝날 줄 알고 대면 수업을 기대했지만... 막상 온라인 수업을 경험해 보니 이만한 꿀이 없는 것 같다. 코로나 초반시기의 학점 인플레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수업을 집에서 듣는 게 매우 편했다. 학점도 나름 잘 받아서 적응을 빠르게 했던 것 같다.
복무기간 동안 본가에서 지내면서 서울에 1번밖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못 봤던 지인들도 매우 많이 만났다. 웬만하면 대부분 2~3년 만에 본 사람들이었는데, 어색함 없이 다들 그대로였다. 다른 거라면 학교 주변 술집이나 가게들이 많이 사라진 것...?
여러 알바 자리도 구했다. 교내 1학년 파이썬 수업 조교나 개발 커뮤니티 스태프, 정올 학원 연구원 등 2년간 폐관수련했던 알고리즘으로 영혼까지 뽑아먹었다. 확실히 코딩 쪽이라 그런지 시급이 적진 않았다. 하지만, 자취생활이 돈 먹는 기계여서 겨울에 인턴으로 벌었던 돈과 알바비가 줄줄 새어나갔다.
이제는 걸린 사람이 더 많은 코로나도 걸렸었다. 대부분 그랬듯이 나 또한 슈퍼면역자인 줄 알고 있던 차에, 어디서 걸렸는지도 모르게 걸렸다. 20~30만 명씩 나오던 대유행시기를 지나 수천명정도 걸리던 5월 말에 걸렸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만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감기몸살이 났던 터라 열나고 목 아픈 건 익숙했는데, 이땐 아프자마자 코로나라고 확신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계속 음성이 나와서 키트만 6~7번 했고,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로 음성이 나왔을 때도 다음날 다시 선별진료소를 찾아갈 정도였고,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목 아픈 것 빼곤 다른 증상이 없었고, 온라인 수업이었기 때문에 사실 생활에 별 영향은 없었다. 다만, 이 당시 인턴 면접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매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돼서 타격이 좀 있었다.
3. 인턴 & 교육 지원
막학년으로 복학하게 되어서, 학기 중에 계속해서 인턴이나 교육을 찾아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먼저 지원한 건 카카오 여름 인턴이었다. 매 해 여름 인턴을 뽑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전부터 공고가 올라오길 기다렸고, 어김없이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이번 여름 인턴에는 ML/DL 직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나 또한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서버 직군을 경험해 보고자 서버 직군으로 지원했다.
카카오 여름 인턴 지원과정은 나에게 여러모로 큰 경각심을 준 경험이었다.
유일한 강점이 코딩테스트이며, 코테로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때까지 참가했던 카카오 코딩테스트를 절반의 시간 안에 다 풀어냈었다. 그래서 코테에 대한 가산점을 항상 먹고 간다는 마인드였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알고리즘을 소홀히 했더니 처음으로 올솔을 하지 못해서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4번까지 1시간 반을 소모했는데, 5번을 3시간 반 동안 풀지 못했다.
면접 또한 경험이 적지만 그래도 사소한 동아리, 학생회 등이나 알바, 인턴 면접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어서 열심히 준비는 하면서 조금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면접을 보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자소서나 프로젝트 정리, CS 지식 모두 빈틈이 너무 많았고 결국 불합격을 받았다. 그래도, 정말 개발적인(?) 면접이 처음이었는데, 앞으로의 준비 방향성이나 공부 방법 등을 잡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구글 머신러닝 부트캠프도 지원을 했다.
https://rsvp.withgoogle.com/events/google-machine-learning-bootcamp_84589b
아직 ML에 대한 꿈을 계속 갖고 있었고, 취준 시기이긴 하지만 풀타임 교육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구글에서 주관하는 거라 올라오자마자 지원했다. 지원 방식이 꽤 특이했는데, ML 교육이니 코테가 없는 건 놀랍지는 않았지만, 면접도 없었고, 구글폼으로 자소서랑 파이썬 관련 문제를 풀어서 제출해 그것만으로 합/불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 특별히 제한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문제도 구글링 해서 풀 수 있었다. 듣기로는 경쟁률이 거의 10대 1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선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합격을 하긴 했다.
카카오 인턴도 떨어지고, 뒤에서 얘기할 라인 인턴십도 붙을 거란 기대가 전혀 없었기에 방학 때 부트캠프를 병행하면서 취준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인턴에 합격했고, 인턴 첫날 과제 설명을 듣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가 둘 다 놓칠 것 같아 부트캠프는 중도 포기했다.
4. 라인 인턴십 & 전환
https://linkareer.com/activity/87442
카카오 인턴 코테를 보고, 구글 ML 부트캠프도 지원을 했을 때 라인 인턴십 공고가 올라왔던 것 같다. "네카라" 중 한 기업이니 인턴 지원 자체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는데, 직무는 지원 마감일까지 고민했다. 채용연계형 인턴이었기 때문에 전환 여부까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빡세다고 하는 라인 합격에 더불어 학사 출신으로 ML 인턴 직무에 합격이 가능할까? 도 있었고, 인턴에 붙더라도 전환이 매우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서버직군과 ML직군을 두고 현실적인 고민을 계속했었다.
그러다가 접수 마지막 날,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더 이상 도전해 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ML 직군으로 지원을 했다.
지원 과정은 서류 - 코테 - 면접으로 진행되었고, 서류와 코테를 같이 보는 느낌이었다.
코테는 2시간에 3문제로 프로그래머스에서 진행되었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코테 난이도는 solved 기준 실버 - 골드 하위 - 골드 중상위 정도 됐던 것 같다. 히든 케이스가 있어서 맞았는지는 모르지만, 1시간 정도 소모해서 3문제를 해결했다.
코테까지 합격하고, 면접이 남아있었는데 면접 일정이 기말고사 기간과 정확히 겹쳤다. 시험시간과 겹쳐서 일정 조정도 한 번 해서 아마 면접 기간 중 거의 제일 마지막에 봤던 것 같다. 심지어, ML 직군은 특정 논문을 읽고 오라는 메일이 있었기에 면접 준비가 정말 쉽지 않았고, 준비를 못해서 차라리 면접을 취소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경험이라도 쌓자고 생각했고, 종강하고 남들 놀 때 이틀 정도 부랴부랴 논문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면접은 1대 3으로 진행되었고, 약 1시간 진행했다. 앞에서 붙을 기대를 안 했다는 이유는 역시나 면접을 못 봤다. 주변 친구들도 인정한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했는데, 예를 들면 A를 물어봤는데 A를 잘 모른다고 했고, 그러면 어떤 것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A라고 답했다. 당연히 갸우뚱하는 면접관님을 보고 이후에 면접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를 정도로 멘탈이 나갔었다.
종강 후 본가에 내려가 있었는데, 지원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합격했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가족들은 좋아했지만, 사실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대략적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7월부터 바쁘게 취준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인턴을 합격해서 "이게 왜 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바로 1주일 뒤에 인턴 시작이었어서, 서울에 올라가 급하게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후에 인턴 동기들을 만났을 때, 다들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다고,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고 하는 걸 보니 나도 기만이었던 건가... 싶긴 했는데 나는 정말 붙을 줄 몰랐다.
인턴은 7~8월 두 달 동안 진행했고, 인턴 기간 내내 재택근무였다. 직무는 정확히 Ads ML Engineering이었다. 즉, 라인에서 제공하는 광고와 관련된 업무였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LINE 메신저에는 광고가 나오진 않지만, 다른 나라들에선 많이 제공되고 있다.
구체적인 인턴 업무 내용은 밝히기 어렵지만, 전체적인 업무를 요약한 하나의 큰 과제가 있고, 세부 과제들을 1~2주 정도씩 해결하는 개인 과제 형태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첫날 과제 설명을 듣고 부트캠프를 포기할 정도로 난이도나 양이 상당했고, 언어마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Golang이었다. 이 직무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인턴 당시 멘토님이 나오시는 이 유튜브를 항상 소개해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PWIbvFTHQ
인턴 과정은 정말 타이트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두 달이 아니었나 싶다. 재택이라 하루종일 집에 박혀있었고, 약속도 2주에 한 번 잡을 정도로 바빴다. 수면 패턴도 망가지고 계속 배달음식만 먹어서 살도 찌고, 피부도 안 좋아지고, 몸이 점점 나빠지는 게 체감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졌고, 짧은 기간임에도 배우고 경험한 게 너무 많았다. 이전 인턴분들의 피드백으로 과제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어 이번에 딱 완성된 느낌이었는데, 인턴 과제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이전 인턴분들이나 리드님들이 과제 난이도가 엄청 올라갔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고,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어떻게 기한 맞춰서 해냈지" 생각이 들긴 한다. 물론, 다른 인턴 동기들도 훨씬 더 잘 해냈고, 자극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주변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얼어붙은 채용시장으로 인해서 이번 겨울엔 모집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꼭 추천하고 싶은 인턴이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두 달이 지나고, 전환 결과 발표만 남겨두고 있었다. 인턴 수료 이후, 결과 발표까지 약 일주일 정도 기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은 정말 하루종일 발표 생각만 할 정도로 긴장하고 걱정도 많이 했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고, 정말 좋은 회사이면서 가고 싶은 직무이기도 했고, 인턴으로 인해 여러 기회들을 희생하기도 했고, 다시 취준 할 생각에 너무 아득해서 그만큼 간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환이 되었다..!
발표가 날 것 같은 날이 되었을 때, 아침부터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놀라면서 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오후에 메일이 왔다. 10초간 속으로 기도를 하고 메일을 열었을 때는, 힘들게 보냈던 인턴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전까지는 만약 합격을 한다면 펑펑 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합격 메일을 보니 실감이 안 나고 얼떨떨했다. 집에 연락을 해서 매우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때서야 취업을 했다는 실감이 났던 것 같다.
물론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취업 스트레스의 해소, 좋은 회사와 가고 싶었던 직무의 합격 덕분에 느낀 이때의 행복한 기분을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이나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5. 프로그래밍 대회
역시나 작년에도 여러 대회에 참가했고, 1년 반 동안 알고리즘을 공부해 오면서, 휴학생 신분이어서 참가하지 못했던 대회도 많이 나갔다.
제일 먼저, 신촌 지역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에 두 번 참가하여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22년에 쓴 글이 많지 않은데, suapc 후기는 둘 다 작성했기 때문에 후기는 링크로 대체하겠다.
팀원이 매번 다르긴 했지만, 그동안 SUAPC에서 꾸준히 순위를 올려오다가 결국 끝을 보고 나니 이 대회에 대해선 더 이상 미련이 없다.
그리고, 처음으로 문제를 직접 출제도 해보았다.
문제 제작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문제를 푸는 스타일이 아니라 출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쉬운 난이도의 대회가 존재해서 운 좋게 출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공부해 온 경력에 비해 의외로 ICPC 출전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계속 휴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ICPC 출전이 추가학기를 다닌 이유에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안 나갈 수 없었다.
프로그래밍을 잘 모르는 주변 친구나 지인들, 혹은 하는 아는 친구들에게도 "취업도 했는데 그런 걸 왜 하느냐?"라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인생 중 1년 반을 올인한 분야이고, 그 분야에서 가장 큰 대회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인데 안 나가보면 아쉽지 않나 생각했다. 그래서, 취준도 하고 겨울 졸업도 하고 싶어서 겸사겸사 일부러 학점을 남겨두었었는데, 운 좋게 입사 전 여유로운 시기를 보낼 수 있었다.
ICPC 팀 연습은 5~6월쯤부터 시작했다. 최대한 주 1회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일정 상 못한 경우도 있었고 내가 막 학년이라 취준의 문제로 연습은 물론 개인적인 준비도 많이 부족해서 팀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연습 과정에는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예선과 본선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게 본 실력이었고, 사람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된 영향도 있었다.
본선 대회 초반에는 계속 한 자리 등수를 유지하며 수상에 대한 기대를 키웠지만, 결국 27등으로 마무리해서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8솔은 해야 수상할 수 있다는 거에 벽을 너무 느꼈고, 오프라인 대회로 참가해 봤다는 거에 의의를 두었다.
ICPC가 끝나고 다음 주에 바로 교내 프로그래밍 대회인 SPC(Sogang Programming Contest)가 있었다.
곧 졸업이었지만, PS를 시작한 뒤에 계속 휴학생 신분이어서 의외로 교내 대회에 참가도, 출제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교내 대회는 꼭 참가해보고 싶었고, 출제진으로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 죄송하게도 거절하게 되었다. 생각해 둔 문제도 없었다.
오프라인 대회이기도 하고, 빠르게 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너무 급하게 푼 탓인지 A번을 제외하고 모든 문제에 WA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물론 F까지 1시간 내에 빠르게 해결했지만, 남은 2시간 동안 G를 풀지 못해서 아쉬워서 우승하고도 다소 찝찝했다. 중간에 페널티로 인해 1위를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남는 건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다 잊었다.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갈 대회도 없었기 때문에, 잘 마무리하고 가서 다행이었다.
알고리즘으로 해볼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본 것 같아서 미련이 전혀 남는 게 없다. 내 실력에 대한 판단을 나름 빠르게 하고 적절한 시기에 손을 놓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전에는 "1년만 더 빨리 PS를 시작했다면..."이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늦게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꽤 든다. 더 일찍 시작했다면 PS를 쉽게 놓지 못하고, 지금쯤 PS를 해온 기간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도가 딱 충분히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재미도 있었던 기간인 것 같고, PS에 쏟았던 노력이 미래의 나의 자신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6. 4개월간의 한량 생활
9월 초에 전환 합격을 하고 올해 1월에 입사였기 때문에, 약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3학점만 수강해서 사실상 백수로 살아갔다.
먼저, 여름 인턴이 지나고 추석이 지나니 운동이 시급한 상황이 되어서 곧바로 헬스장을 등록하러 갔다. 다행히 같이 다니는 친구도 있고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서 지금도 계속 다니고 있다.
그리고, 취준으로 잡아두었던 기간이 갑자기 비어버려서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보니 9월에는 별거 없이 거의 친구들과 약속만 잡다가 지나간 것 같다. 술도 많이 먹고, 입사는 안 했지만 미래의 내가 번다는 생각으로 돈도 많이 썼다.
학교를 다니긴 하는 입장이어서 길게 놀러 가기는 쉽지 않았고, 학기 중이라 여행을 같이 갈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냥 사람들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다들 여행 안 가냐는 말들을 많이 해서 오히려 그게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복에 겨운 소리지만 이 시간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들기도 해서, 일단 서울을 떠나보자는 생각으로 부산을 혼자서 가봤다.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여행은 먹는 거라고 생각해서 아예 푸파 컨셉으로 갔다. 2박 3일 동안 광안리 주변 맛집 위주로 먹는 것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꽤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은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멀리 나와 있다는 상황이 주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친구와 베트남을 갔다.
다낭이 우기여서 날씨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비가 별로 안 왔고 여행하기에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바로 다음 주에 가족끼리 단양과 경주도 갔다 왔다.
길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꽤 재밌게 즐긴 것 같다. 아마, 최근 10년 간 유일하게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던 4개월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이제 슬슬 회사를 다니고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입사하고 나니 역시나 돈 많은 백수가 최고란 걸 느끼지만...
7. 2023년 목표
2023년 목표는 단 하나다. 신입 개발자로서 회사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남들에게 "라인 개발자 답네"라는 소리를 듣는 게 목표다. 오티 때도 그랬고, 지금도 종종 내가 어떻게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소문대로 다들 실력도 좋고 열일하는 분위기라서, 주니어 때 성장하기 되게 좋은 환경인 것 같다. 초반이기도 하고 직무 특성상 공부해야 할 양이 상상 이상이긴 한데, 시키는 것만 잘 따라가도 평균 이상은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게 내 능력이고, 그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재택근무라서 몸 관리도 계속 신경 써서 해야 할 것 같다. 계속 앉아서 일을 하는 게 생각 이상으로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것 같다. 또 집에서 일하는 게 회사만큼 100% 효율이 나진 않아서 지금도 어떻게 하면 재택 환경을 개선해 나갈지 계속 고민 중이고, 이 부분은 리드님께도 말씀드렸었는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계속 찾아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이것 또한 내 역량인 것 같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다시 블로그 포스팅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업로드해서 100만 조회수를 향해 달려가야겠다.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 되어서 이 글을 봤을 때 2023년에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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